작성자: 한니발(hanniba)
'2개의 자아'라는 표현의 의미
앞서 분석해봤던 제1심 판결문에서 엿보였던 오원춘의 행동패턴에는 '스트레스가 폭발한 발기부전 환자의 어설픈 살인'과 '프로페셔널 사시미 전문가'의 모습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2개의 자아"라는 비유적 표현을 활용했습니다. 이 비유적 표현은 오원춘을 진범, 혹은 주범으로 위치시켜놓고 활용한 표현이 아니라 뭔가 급조한 것 같은 오원춘의 범행 묘사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급조했기 때문에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2명의 행각이 1명에게 억지로 갖다붙였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확실한 것은 '프로페셔널 사시미 전문가'의 모습은 돼지 도축을 한 경험이 있다던 오원춘이 할 수 있는 사체훼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리 준비를 함에 있어서도 초보자들이 가장 애를 먹을 때가 채를 썬다는 등 칼 솜씨의 미숙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돼지 도축과 뼈 인근에 있는 살점도 정교하게 가를 수 있는 사시미는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제1심 판사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불상의 용도'라는 표현을 활용했을 것이고요. 하지만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과 변호인의 제출증거 내에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의 입장에서 물증 없이 자신의 판단을 함부로 판결로 연결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1심 판결문에는 애매한 표현들이 많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항소심에서는 오원춘에 대해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판결을 제시했습니다. 판결문이 도착한 현 상황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엌칼만으로 사체를 손괴했기 때문에 불상의 용도에 제공할 의도가 없다?
사체의 인육을 불상의 용도에 제공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체의 인육을 분리하는 작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적합한 작업도구를 미리 갖추어 두었을것이고, 또한 사체에서 인육을 분리함에 있어서도 분리된 사체의 활용이 편리하도록 살점을 큼직하게 베어 내거나, 살점을 잘게 잘라 활용할 작정이었다고 하더라도 효율성을 고려하여 일단 살점을 큼직하게 베어 낸 다음 이를 잘게 자르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임에도, 피고인이 사체손괴를 위하여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집에서 쓰던 부엌칼만을 이용하였고(도중에 칼날이 무뎌져 여러 차례 칼날을 갈아서 사용하였음은 위에서 본 바이다), 또한 피해자의 살점을 358조각에 이르도록 잘게 베어 내는 방법으로 사체를 손괴한 점에서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체 인육을 분리하여 이를 불상의 용도에 제공할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단정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쉽게 요약하면 이겁니다.
1. 사체 인육 분리가 주목적이었다면 이를 할 수 있는 더 좋은 작업도구가 있었을텐데 없었다.
2. 효율성을 고려해 살점을 큼직하게 베어 낸 다음 잘게 자르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부엌칼만 사용하고 그 칼을 갈아가면서 손괴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
3. 그러므로 '불상의 용도'에 제공할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하기에 무리가 있다.
상상력이 꽉 막힌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엌칼만으로 정교하게 사시미를 했다는 것은 오히려 사체 인육 분리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자임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설령 다른 도구가 있었다고 해도 어디론가 처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등법원 판사 정도의 지위라면 고급 일식집을 얼마든지 드나들었을텐데 거기서 주방장이 어떻게 회를 치는지도 충분히 봤을 것입니다. 피해자의 사체를 손괴하는 과정은 정교한 사시미에 가깝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뼈에 붙어 있는 살들까지 정교하게 손괴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이 판결은 그야말로 억지입니다.
하지만 이 '억지'를 판사만의 책임으로 모는 것도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이 ‘부엌칼로 사체를 유기하려고 토막을 시도하였으나 무릎부위 관절이 분리되지 않아 전신피부를 절단하는 방법으로 손괴하게 되었는데 그렇게까지 잘게 베어 낸 이유를 자신도 잘 모르겠다’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는 점, 위 「프로파일링 보고」에 ‘토막과 피부절단의 형태는 시신은닉이나 이동의 편의를 위한 것이며, 처리과정에서의 미숙이 피부절단이라는 잔인한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술에 극단적으로 취한 상황도 아니었음에도 오원춘이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그대로 그를 받아들인 수사기관이나, 그걸 판결문에 인용한 판사나 뭐, 애초부터 제대로 이 사건을 살펴볼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정교한 사시미를 '처리과정에서의 미숙'이라고 보고한 무려 '프로파일러'라는 사람들의 보면 할말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고인이 처음에는 부엌칼로 피해자의 사체를 토막내려고 하였다가 부엌칼만으로는 사체의 절단이 용이하지 않자 단순히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하기 쉽게 만들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못한 채 토막을 시도하는 데 사용했던 부엌칼을 그대로 이용하여 사체의 살점을 최대한 잘게 베어 내는 방법으로 손괴하기에 이르렀다고 해석하는 쪽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A라는 방법을 활용하려고 하니 쉽지 않아서 (더 어려운) B라는 방법을 활용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편의를 노렸다고 해석하는 쪽이 보다 합리적이다."
한눈에 봐도 말이 안되는 해석입니다. 게다가 오원춘이 중국 현지에서 도축을 해봤거나, 혹은 보조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판결문에 적시해놓고도 이런 해석을 내놓은 것입니다. 도축을 해봤기 때문에 관절분리라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오원춘이 떠든 그대로 판결에 인용했다는 의미로 봐야 합니다.
그외에도 김모 판사가 최소한 상상력이 꽉 막힌 판사임을 주장할 수 있는 사안이 또 있습니다.
혹시나 피해자가 살아있을까 우려되어 다시 멍키스패너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리쳤다고 진술하고 있는
바, 사체의 인육을 불상의 용도에 제공할 의도와는 무차별 살인 범죄의 경우에도 범인이 사망을 확인하려는 차원에서 또는 비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이미 사망한 자에게 다시 유형력을 가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 점에서 볼 때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가피해자 사체의 인육을 확보하여 이를 불상의 용도에 제공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 역시 제1심 판결문 분석의 핵심으로 삼았던 바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수사기록 조작'을 읽을 수 있어야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인 못지 않은 충격을 주는 사체손괴 수법이고 정교한 전문가의 수법이라고 볼 수 밖에 없으며, 침착하고 절제된 심리상태가 아니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방법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시신의 상태라는 물증이 뒷받침하고 있는 후자는 더욱 강력한 증명력을 갖습니다.
하지만 김모 판사는 뭔가 어설픈 전자의 수법을 토대로 확실한 물증까지 가지고 있기에 더 강한 증명력을 가지는 후자를 부정하는 이상한 사고방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 주장을 제시합니다.
사체 인육을 불상의 용도에 제공할 의도와는 무관한 강간, 살인, 사체손괴 등의 범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범행의 태양 또는 범인의 태도에 불과하므로
오히려 사체 인육 제공과 무관한 여타 범죄에서, 사람의 관절을 쉽게 잘라 토막을 내고 보관하거나 은닉하는 수법을 선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범죄에서는 사람의 살은 '또다른 용도'가 있다기보다 보다 효율적인 시신 유기나 보관을 위한 목적물이기 때문에 살이 손상되는 것에 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여타 범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범행의 태양 또는 범인의 태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이 더 걸작입니다. 이 부분은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평소 인육을 취급해 왔다는 취지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한 바 없고, 피고인이 평소 인육을 취급하였을 것이라고 의심되어 피고인의 주거지 외부에 위치한 쓰레기 배출구에서 수거한 뼈조각 11점 및 피고인의 주거지 대문 앞쪽에서 수거한 뼈조각 7점 등의 성분을 분석하였으나 모두 동물의 뼈로 밝혀졌을 뿐(위 뼈조각 중 6개는 개 뼈, 9개는 닭 뼈, 3개는 칠면조 뼈와 같은 유전자 염기서열이 검출되었다), 피고인이 인육 대상 범죄와 관련되었다거나 인육을 취급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아수라 블로그'에 자주 오가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사진 한장이면 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경찰의 수상한 수사기록과 판사의 수상한 판단이 겹쳐진 사례라고 봐야 할텐데요. 여타 정황들과 어우러질 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교묘한 꼬임을 해놓은 사례도 있습니다.
오히려 변호인은 이러한 점을 들어, 피고인이 인육의 사용(거래)과 관련된 자로서 타인을 살해함으로써 인육을 확보할 의도를 가졌다고 한다면 이 사건 범행 말고도 최소한 2011. 4.경부터 2012. 1.경까지 피고인과 내연관계에 있었던 사영중 또는 2012. 3. 30.경 피고인의 집에서 성매매를 가진 성명불상의 여성 등을 상대로도 같은 범행을 시도하였어야 할 텐데, 피고인이 위 여성들을 상대로 그러한 범행을 시도해 봤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는 점에서도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사체 인육을 불상의 용도에 제공하기 위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오원춘을 이 사건의 확실한 주범이자 진범이라고 본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은 문제가 많습니다. 오원춘은 그저 정신나간 광증 환자가 아닙니다. 정신나간 광증 환자라면 그런 사시미와 유사한 사체 손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와 '사생활'을 분리할 수 있는 이성은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강호순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강호순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는 그 기간에도 다른 여성들과 데이트를 즐기거나 맞선을 보는 등, '살인을 하는 그 이외의 순간'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강호순 역시 '업무'인 살인과 '사생활'인 데이트나 성 생활을 분리해서 대처했다는 의미입니다. '업무'와 '사생활'의 분리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계좌이체 흔적이 없기 때문에 인육거래는 무리하다?
더더욱 걸작은 아마도 다음 부분일 것입니다. 황당했습니다.
피고인이 위와 같은 국내 체류기간 동안 5,500만 원 상당을 모아 중국에 사는 가족들에게 송금한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피고인이 국내 입국 이후에 비교적 지속적으로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매월 120만 원 내지 300만 원 정도를 벌었던 반면 피고인이 술값을 지출하지 않으려고 건설현장 동료들과의 술자리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 등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아니하였고, 또 근로기간 중 일부는 공사현장에서 숙식 일체를 해결하기도 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비록 피고인이 정기적인 성매매를 위하여 수입 일부를 지출한 사정을 감안하여 보더라도, 피고인이 국내 체류기간 동안 위와 같은 액수의 돈을 모아 중국에 사는 가족들에게 송금한 사실이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여기에 피고인의 은행계좌 거래내역상 공사현장 관계자 이외에 다른 의심스러운 금전거래관계가 특별히 확인되지도 아니한 점 등을 덧붙여 볼 때, 피고인이 일용노동으로 인한 수입 외에 인육거래 등 부정한 방법으로 별도의 소득을 얻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어떤 미친 사람이 장기적출이나 인육판매 목적으로 돈거래하면서 은행계좌로 거래하겠습니까? 사망한 태아로 만드는 인육캡슐에 대해서도 비밀리에 만나 현금거래했다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제한된 약 3년 9개월 간 5,500만원(월 평균 120만원 이상 송금)을 중국에 거주하는 가족에 송금하면서도 성매매 여성과의 잦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오원춘은 '건설현장 업무'라는 공식적인 직업 이외에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는 의심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술을 안먹으려 노력하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저 정도 수입으로 송금+성매매 여성과의 만남+일상 생활 유지는 사실상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7개월 간 3천만원이 집중적으로 송금됐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더더욱 집중해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판사는 이 부분을 '고의'에 가까울 정도로 무시했습니다. 건설현장 막일 노동자가 7개월 간 3천만원을 송금했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장기적출이나 인육판매로 번 돈으로 송금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소박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소박함'은 오원춘이 주범이 아님을 역설하는 또 하나의 근거입니다.
상고심 과정에서 지켜봐야 할 것들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 등에서는 상고심은 대단히 제한적으로 진행됩니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명시된 법률위반 사례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대부분 변론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관이 판결합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에서는 검사나 그 상대방이 제기한 상고이유서에 나열된 각종 사유들 이외에도 사실 오인이나 양형 부당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상고심이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보다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에 비해 절차가 간단한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결과가 빨리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수사기관이 제출한 각종 증거기록부터가 잘못되거나 의혹 투성이이기 때문에 대법원인들 제대로 판결을 하려고 하더라도 제한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상고심이기 때문에 약간이나마 지켜볼 여지는 있습니다.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어떻게 바라볼지 대단히 궁금한 상황입니다.
어쨌든 검사는 상고장을 제출한 상황입니다. 상고심 역시 주의깊게 지켜본 후, 또다시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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