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4. 09:46
객원칼럼
다음은 2000년 6월 2일 조성민과의 열애설 발표기사입니다.
2000년 6월 2일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4개월 전에 희안한 일이 벌어집니다.
2000년 1월 22~24일입니다. 조성민에 따르면, 조성민과 최진실의 첫 만남은 1998년 12월이고, 연인이 된 시기는
1999년입니다. 2000년 1월이면, 이제 양가에 결혼허락 받느라 뭐 한창 애쓰고 있을 시기라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이
상황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스토커가 달라붙어서 어찌어찌하여 연락처를 알아서 괴문자를 보내면, "너는 영원히
내것"이라는 식의 광기어린 집착을 표출하는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건 골때리는게 "양심도 없는 년"이라는 메시지가 남았다고
합니다. "양심도 없다"는 비난을 퍼부우려면, 최진실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고 인간관계가 있어야 정상입니다. 게다가 "양심도 없는
년"이라는 표현은 애정표현도 뭣도 아닙니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도 없는 년이라...
금융실명제 성공 청와대 초청받은 최진실 "하루 용돈 2만 5천원"
이것은 1994년 8월 12일자 서울신문 기사 <독일도 못한 실명제 정착에 성공>의 일부입니다.
"실명제가 뭔지 몰랐"고, "저금할때 차명으로 하면 돈을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진실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번 돈에 대해 묻습니다. 어머니는 "전부 실명으로 예금돼 있다"고 안심을 시켜줍니다. 최진실의 재산관리가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김영삼에 의해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은 최진실은 또한 이런 말을 남깁니다.
1994년 8월 12일자 세계일보 기사 <국민 협조로 실명제 성공 확신>의 일부입니다. 1992년 최진실의 하루 용돈은 2만원이고, 1994년에는 2만 5천원입
니다. 당시 최진실은, 1992년 1년 소득으로 2억 9천만원으로 신고했고, 1억 2천만원을 세금으로 내 종합소득세 100위 안에
들었습니다. 연예인 중에는 1위였습니다. 정말 2억 9천만원 소득이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종합소득세 10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통산 2회 납치 미수, 1회의 절도 사건
최진실은 통산 2회의 납치 미수 사건을 겪었고, 1회의 절도 사건을 겪습니다.
이 중간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
내년에 가수 변진섭과 결혼할 예정인 최진실도 어떤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을까 벌써부터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
<경향신문> 1994년 11월 11일자 기사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스타를 잡아라”>의 일부
1998년 12월은 조성민과 만난 시기입니다.
일단 추출할 수 있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변진섭과의 결혼설 전후 6~7개월 사이에 납치미수 사건과 절도 사건을 겪습니다.
2. 조성민과 처음 만난 시기에 다시 납치미수 사건을 겪었으며, 열애설 발표 4개월 전에 "양심도 없는 년"이라는 해괴한 문자를 받습니다.
돈과 관련된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1992년 소득 기준, 최진실은 종합소득세 고액납부 100위 안에 들었고, 연예인 중 1위였습니다.
2. 저축액의 예금주에 관해 어머니에게 문의합니다.
3. 최진실의 하루 용돈은 1992년 2만원, 1994년 2만 5천원입니다.
뭔가 한걸음 더 근접한 것 같습니다. 최진실-최진영-조성민 등 약 2~3년 주기 연쇄 사망사건은 진실이 밝혀질 경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집중적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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