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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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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25 17:36
    2013. 1. 4. 09:27 객원칼럼

    작성자: 대마초(qodrlfdl05)





    일전에 아수라님께서 문제가 되는 학계가 심리학계와 더불어 역사학계가 있다고 하셨죠.

    역사전공인 제 입장에서 봤을때도 이거 존나 수상합니다. 수상한 점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확한 증거를 좆빨나게 중시한다.

    2. 주류의 입장은 죄다 기존의 정설을 고수하려 한다.

     

    1번같은 경우는 역사에서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임머신타고 옛날에 가서 보고 오는 것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역사학자들은 유물과 사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게 역사적 내용을 담고있는 사료가 100%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죠. 왜냐하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의존하는 것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 서술한 기록에 의한 역사이기 때문이죠. 흔히 예를 드는 삼국사기,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라는 존나 대단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김부식이 사대주의적인 관점과 더불어 신라빠돌적 관점으로 써내서 편파적이라고 말을 하죠. 실제로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서 신라의 모습이 졸라게 과장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죠. 하지만 허점투성이인 삼국사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마땅히 남아있는 기록도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여기서 정확한 증거를 존나 제시하라고 발정난개새끼마냥 달라들면 존나 머리아파집니다. 이게 옛날 책이고 그 당시의 사건들을 정확히 서술하고 있다해도 그걸 발굴한 새끼조차 그게 진짜인지는 모르는데 거기에 뭐하나 꼬투리 잡아서 존나게 시비털면 최초 발굴자라해도 할 말이 없어지는 거죠. 자기가 그 시대에 안살아봤으니까 그 내용에 대해 확답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환단고기가 있죠. 분명히 옛날책이고 그때의 사건을 담고 있는 기록으로써의 역사이지만 미친 씹짱깨들이 작정하고 꼬투리잡으니 오히려 환빠라는 같잖은 신조어까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바로 과거를 탐구하는 학문 역사의 맹점입니다.

     

    2번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주류 역사학자라는 새끼들이 쳐돌아서 발생한 문제입니다. 아니 막말로 이새끼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정설을 공부하면 김큰중국의 1800% 허세끼가 다분한 나름 민주주의 투쟁역사에 오르가즘을 느껴 좀비좌빨이 되도 이상할 게 없으면서 정작 역사적 정설이 틀려서 고치겠다고하면 그 순간 개수구꼴통이 빙의되어 입에 게거품물고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설을 수호하겠다며 물어뜯습니다. 당최 알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이번 글의 주제도 2번과 같이 역사적 정설을 부정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류 역사학자라는 새끼들은 좆까는 소리라며 학문에 다수결의 원리를 대입해 비주류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학문에 다수결이라니 22세기에는 학문정치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아무튼 이 글에서는 교과서에서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마한의 역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 한이라는 국가이름은 국사교과서에서 약 3줄정도로 나오죠. 삼국시대가 들어서기 전에 존재했던 소국이였다는 내용과 더불어 근초고왕에게 3세기때 정복당했다는 내용, 이게 독자분들이 배웠던 역사일 것입니다. 6차교육과정에서 이렇게 표기되자 마한의 역사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자며 내용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자 7차교육과정에서는 따로 내용을 추가해 마한은 약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까지 존재했다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8차교육과정에 들어서자 다시 자취를 감치고 6차교육과정의 내용으로 회귀합니다. 저 내용이 잘못된 것이어서 수정을 한 것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사실 마한은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세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경기도 일부 지역까지 이르는 땅이 소국 마한의 영토였다는 점이 그러하죠. 그런데 그 거대한 영토가 근초고왕에 의해 몇 년 안되어 정복되었다?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행정체제의 적용기간에도 모순점이 발생합니다. 교과서의 내용대로 따지면 마한은 3세기에 백제에 병합되고 4세기에 22담로 행정체제가 확립됩니다. 그런데 정작 7세기에 가면 백제의 행정구역은 37개로 늘어나는데 이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행정구역의 분화는 인구가 증가했을 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열악한 의료환경에 다산다사의 인구증감형태를 띄는 고대사회이고 뻑하면 전쟁터져 장정들 죽어나가는 전란의 시기여서 인구가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22개의 행정구역이 갑자기 37개로 분화된다? 인구가 그대로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시단위 지역을 두개로 쪼개 군으로 격하시키는 방법빼고는 없습니다. 물론 이 미친짓을 하는 군주는 있을리가 없고요. 그러기에 마한이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까지 존속했다고 주장하는 비주류 역사학자들은 마한이 백제에 점차적으로 넘어가 6세기 말에 완전히 병합되었다고 말합니다.

     

    허나 이렇게 미심쩍은 부분을 보고도 주류 역사학자들은 또 미친듯이 1번 패턴, 증거를 제시하라고 게거품을 뭅니다. 심지어는 동북공정도 제대로 못막은(못막은건지 안막은건지는 지들빼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후후.) 동북아역사재단의 작자들은 아예 정설대로 삼국시대 지도를 만들겠다고 다수결로 비주류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묵살한 뒤 제대로된 지도를 만들곘다며 교과서 그대로 3세기에 마한이 사라지도록 지도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 삽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증거가 4세기에 그려진 양직공도 백제사신도 그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린 이 유명한 백제사신 그림 뒤에 써진 글귀에는 "백제는 마한의 속국이다"라고 써져있었던거죠. 이정도까지 나왔으면 할 말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한의 고분크기에서도 백제를 능가한다는 것이 보여지는데 실제 백제의 대표적인 왕릉인 무령왕릉의 길이는 22M인것에 반해 마한의 고분은 길이가 약 46M에 달한다고 합니다. 짱깨가 조선 속국으로 만들었을 때는 곤룡포의 용발톱 갯수까지 조선한테 1개 더 적게하라고 했는데 백제는 마한을 속국으로 만들어놓고 지들 왕릉보다 더 큰 고분을 만들게 놔뒀다? 이것마저 말이 안됩니다.

     

    이 마한의 역사는 환단고기와 같게 평가절하를 시키려는 움직임이 다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주류 역사학계는 마한을 폄하하려고 하는가? 환단고기야  짱깨들이 구라친거에 외통수를 가할 수 있는 역전의 카드라 짱깨들이 이빨깐거 안들킬라고 환빠로 몰아가는 경우라지만 마한같은 경우는 둘 다 한민족이 세운 국가인데 왜 굳이 그랜져대신에 티코를 팔아줘 그랜져를 엿먹일려고 드냐는것이죠. 전 이점에 대해서 백제가 한민족이 세운 국가가 아니라고 추정하고 짱깨와의 검은 커넥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내용은 차후 조사를 통해 밝혀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아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