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7. 09:57
객원칼럼
작성자: 한니발(hanniba)
최진실 사망 후, 조성민이 생매장당하던 시절에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조사를 쓰고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뭐, 당시 제 블로그는 대폭격을 맞았죠. 조성민 옹호하는 천하의 개새끼 쯤으로 낙인찍혀서 아줌마들의 저돌적인 공세에 시달린거였습니다. 당시에는, 최진실에게서 심리적 동질성을 느끼는 아줌마들과 이 기회에 한건 하려는 페미들의 발광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그 당시에 몰려왔던 세력들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마 그것들, 다 타블로 옹호하던 괴뢰집단의 모체일 것입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최진실-조성민 이혼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느꼈던 의문점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 비로소 풀린 해답들에 대해서 저는 적어도 우리 카페에서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썰을 풀어낼 수 있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당시 느꼈던 것들 중, 일단 최진실-조성민 부부의 이혼과정에서 왜곡된 것들에 대한 정보들부터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최-조 이혼의 정확한 과정 추적, 왜곡 바로잡기 2. 최진실 모친의 돈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 및 이해할 수 없는 행각 3. 향후 조성민 부모와 최진실 모친의 법정 소송 가능성 |
4편도 하려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조심스럽습니다. 3편까지의 추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들에 대한
추리가 될 것입니다만, 명예훼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것은 아마 여러분들 각자의 추리로부터 느껴지시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미 자유게시판에서는 일부분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요.
일단 1편 들어갑니다.
시사인 기사 "조성민이 아이 포기한 날 진실이는 통곡했다" 의 일부 |
- 최진실씨와 조성민씨가 이혼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진실이는 절대로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환희 엄마는 아버지 없이 자란다는 게 어떤지 안다. 이혼만은 피하려 했다. 그런데
환희 아빠는 술집 마담과 빨리 결혼해야 하니 이혼해달라고 하던 사람이다(<시사IN>이 입수한 이혼합의서 뒷부분에는
조성민, 최진실, 그리고 조씨가 재혼한 심 아무개씨의 사인이 있었다). 임신한 사람을 밀치고 발로 찼던 사람이다. 배에 있는 아이가 자기 아기가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다닌 사람이다. 그
런 사람이 지금 양육권을 말하고 있다. 결국은 돈 문제 아니냐. 진실이가 이혼하고 나서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그러다 환희 아빠 부인(심 아무개씨)하고 싸우고 나서는 약을 두 배로 늘렸다.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같이 먹었다. 두
봉지, 세 봉지를 털어넣은 적도 많았다. 빼앗아도 소용이 없었다. 특히 환희 아빠 기사를 보면 약을 많이 먹었다. 약 먹고 술을
마시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주진우가 당시에 했던 인터뷰였는데, 일방적으로 최진실 모친 입장만 떠들어놓음으로써 제가 반론을 제기했고, 그 반론 제기로 인해 저는
한동안 주진우의 원수가 됐던 기사라 저로서는 뜻깊은 기사입니다. 이걸 다시 끄집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
파란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부부의 이혼과정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면서 조성민이 매장당했고, 보시다시피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 모친이 이렇게 다시 언급하면서 조성민은 다시 생매장을 당합니다. 당시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면서
반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1. 조성민은 임신한 사람 밀친 폐륜아?
최진실 주장 - <일간스포츠> 2002년 12월 8일자 기사 <충격 속에 말문 연 최진실>의 일부 |
(2002 년) 9월말 귀국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11월 6일 일본에서 성민 씨의 짐이 들어오는 날 크게 싸웠다. 일본 아파트가 45평이라 짐이 아주 많았다. 성민씨는 '내가 짐을 싸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짐을 찾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아냐'며 그 짐들을 발로 툭툭 차며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다툼이 커졌다. 급기야 성민 씨가 내 뺨을 두 대 때리고 밀치면서 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스무 바퀴 정도
굴렀다. 임신 중인 나를 때린 것이다. 다른 것보다 아기가 걱정돼 시누이에게 울면서 전화를 해 함께 병원으로 갔는데 다행히
아기에게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난 얼굴이 부었고 온 몸에 멍이 들었다. |
조성민 주장 - <일간스포츠> 2002년 12월 19일자 기사 <"이혼" 폭탄선언 조성민>의 일부 |
" (최진실과 사이가 안좋아지던 상황에서 한 여자를 알게 돼 '말벗'이 됐는데 누나가 오해해 최진실에게 '신랑 조심하라'고 전하면서) 서로 손찌검과 심한 욕설이 오갔다. 최진실도 손톱으로 할퀴고(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다고 했다) 내 T셔츠를 모두 찢어 버릴 만큼 거치게 다퉜다. 솔직히 나도 얼떨결에 한 대 때렸다. 하지만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했다." |
누구의 주장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십니까? 최진실이 말하는 조성민은 이유없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습니다. 반면, 조성민이 말하는
과정은 나름의 상황 설명이 보이고, '말벗'이라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존재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시인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누나가 그걸 최진실에게 제보했다고도 말하는 더욱 솔직한 일면이 보이고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발언상 맥락의 문제일 뿐이고,
폭행과정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최진실의 주장이 치밀해보입니다.
그런데, 이후 최진실은 좀 심했다 싶었는지 중요한 번복을 합니다.
<일간스포츠> 2002년 12월 20일자 기사 <최진실-진영 "기막혀"> |
"한편 최진실은 18일 밤 기자회견 도중 '조성민이 밀쳐 계단에서 20차례나 굴러 떨어졌다'고 말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와전된 내용이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성민 씨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고, 내가 일어나면 다시 밀쳐 넘어뜨리는 것을 20번 가량 반복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계단에서 20번 구른 것으로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
그렇죠. 20번을 구르면 거의 그 자리에서 유산을 할 수 있을 위험의 충격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조성민이 폐륜아라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20번 밀었다고 말을 바꿉니다. 아직 시나리오가 완전히 짜인게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0번'이라는 핵심은
유지하고 있는데, 폭행의 방법은 완전히 달라진겁니다.
그 당시, 조성민의 당시 내연녀 심씨가 피식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씨의 집에는 20번 구를 계단도 없다"
아마 이 때문에 최진실은 '20번'이라는 핵심은 유지하면서도 폭행의 방식에 대해서는 완전히 바꿔 진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남은 숙제는 조성민은 과연 20번 밀던, 20개의 계단에서 임산부를 밀었던, 지 새끼를 벤 임산부를 밀 폐륜아냐는 것입니다. 이는
최진실 모친의 주장 "뱃 속의 애를 자기 애가 아니라고 했다"를 논파할 수 있는 근거에서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2. 조성민, "둘째 아이는 내 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요. 웃기는 소리입니다. 오래 전 일이라 다들 기억 못한다고 최진실 모친이 구라를 너무 천연덕스럽게 치더군요.
"'
이혼하겠다'는 기자 회견을 한 다음 날인 (2002년 12월) 19일 밤 조성민은 최진실이 서울 잠원동 집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만나러 갔다. 그러나 문 앞에서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했고, 전화로 최진실의 어머니와 통화했다. '최진실을 만나 얘기하고
싶다'고 했으나 '지금은 조산 기미가 있어 병원에 가려던 참이다'라고 거절 당했다. 이어 '아니면 장모나 처남(최진영)이 대신
나와 얘기 좀 하자'고 요구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그러면 아이(환희)라도 보게 해 달라'고 했으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일간스포츠> 2002년 12월 20일자 기사 <조성민 "대화로 풀자">
"조성민은 26일 오전 집을 찾았으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집 안에 있던 최진실과 처가 식구들은 문을 굳게 잠근 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조성민은 현관의 스피커 폰을 통해 잠시 최진실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조성민은 '아들 환희도 보고 싶었고, 둘째 아이의 출산도 임박해 집을 찾았다. 또 옷가지도 몇 벌 챙겨와야 했다. 그러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며 씁쓸해 했다." -<일간스포츠> 2003년 2월 27일자 기사 <최진실 '119 소동'>
"나흘 뒤에야 기자를 통해 둘째 딸의 출산 소식을 전해 들은 조성민이 5일 오전 11시 처음으로 딸을 가슴에 안고 울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뒤늦게 손녀를 안고 울었다.
5일 오전 11시 서울 잠원동 집을 방문한 조성민은 집에 들어가 거실에서 딸을 안아 볼 수 있었다. 최진실은 안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조성민과 그의 가족이 이 날 함께 잠원동 집을 방문한 이유는 '둘째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5일 새벽 2시께 기자들에 의해 최진실의 지난 1일 출산 소식을 전해 들은 조성민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뒤 오전 11시 잠원동 집에 도착했다. 최진실과의 신혼 살림집이었지만 이젠 최진실이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근 채 잘 열어주지도 않는 집이었다.
조성민은 '출산과 관련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늘도 문을 열어줄 지, 안 열어줄 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왔다. 아이 아빠로서 뒤늦게라도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심한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조성민은 잠원동 집으로 출발하기 직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2∼3차례 최진실을 찾아가 서로 우습게 만들지 말고 아이를 낳을 땐 반드시 연락을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일언반구도 없이 아이를 낳았고, 이름까지 상의 없이 지었다고 들었다. 정말 어이없다'고 밝혔다." -<일간스포츠> 2003년 3월 5일자 기사 <조성민 "불쌍한 내딸">-
제가 이걸 들이밀자 어떤 아줌씨는 "스포츠신문을 뭘 믿고 스포츠신문 나열로 우리를 속이려 드느냐"고 따져대더군요. 황당했습니다. 일간스포츠는 하나의 예시일 뿐, 당시 연예가중계니 뭐니 최진실 집 앞에서 이 정황 취재하던 언론이 한둘이 아니었고, 방송에도 대놓고 나왔던 사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이런 류의 사건에 목숨걸고 취재할 언론은 당연히 스포츠신문 아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저게 "둘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고 떠든 자가 할 행동입니까? 물론 언론플레이 용도로 연기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사이코패스 아닌 한 부모까지 동원해가면서 저따위 짓을 하기에는 어지간해선 힘듭니다. 게다가 최진실과의 결혼을 일관적으로 반대한 조성민 부모가, 조성민의 하급 언론플레이 따위에 섣불리 동의할 것 같지도 않고요.
3. 딸 이름을 '조신희'라고 지은 최진실
최진실은 이어 딸 이름을 '신희'라고 지었습니다. 한번 발음해보십시오, 조신희. 최진실은 시어머니가 그렇게 지었다고 주장합니다.
-아이 아빠(조성민)가 미리 아이 이름을 지어놓았다고 하던데.
# 아이 이름은 '조신희'이며 시어머님이 지어놓으신 걸로 안다. 시어머님은 내가 출산하기 며칠 전에도 잠원동 집에 오셔서 손자인 환희와 함께 놀아주셨고 종종 집에 들르시기도 했다.- <스포츠서울> 2003년 3월 6일자 기사 <[연예가뉴스] 최진실 일문일답 "딸 이름은 신희">
# 아이 이름은 '조신희'이며 시어머님이 지어놓으신 걸로 안다. 시어머님은 내가 출산하기 며칠 전에도 잠원동 집에 오셔서 손자인 환희와 함께 놀아주셨고 종종 집에 들르시기도 했다.- <스포츠서울> 2003년 3월 6일자 기사 <[연예가뉴스] 최진실 일문일답 "딸 이름은 신희">
그런데 조성민 측에서 바로 부인했습니다.
- 시어머니가 아기 이름을 지어줬다는 얘기가 있는데.
▲
황당하다. 사실이 아니다. 아기 낳기 전 만났을 때 최진실이 ‘아기 이름은 뭘로 할까요. 돌림자 희자를 쓰고 싶다’고 하길래
‘여자는 돌림자를 안 써도 된다. 내가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최진실은 한자 뜻도 모른 채 ‘S희로 하는 게 어때요’라고
했다. 그래서 ‘한자의 뜻과 획수도 중요하다. 나도 알아보마’라고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시댁에서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일간스포츠> 2003년 3월 5일자 기사 <조성민 아버지 인터뷰>의 일부
뭐, 시부모가 애보러 왔는데 문도 안열어줘서 개망신당하게 해놓고,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며, 큰아들과 놀며 종종 놀아주셨다고 바로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건 뭐라고 봐야 할까요?
딸 이름 조신희, 하여튼 최진실이 정상적인 사고판단을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아파탄과 논점일탈, 오락가락 판단 등에 대한 문제는 최진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심각한 행각은 최진실 모친이
보여줬고, 그 행각의 촛점은 오로지 '돈'이었습니다. 그 문제는 다음 기회에 2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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